스토리1

[스크랩] Re:정읍고부초등 개교100주년 큰잔치 _ 追加

약산약수산지기 2006. 8. 29. 22:39
“독립운동·동학혁명 진원지였어요”
광복절에 개교 100주년 전북 정읍 고부초교
구한말 관보엔 ‘총리 이완용이 학교 인가’
을사조약 이후 日帝헌병대 상시주둔 감시
오늘 동창생 등 1500명 모여 ‘100살 축제’
 
▲ 정읍 고부초등학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학생들이 안무연습을 하고 있다./김영근기자 kyg21@chosun.com
“아따, 그건 저쪽에 설치해야제. 이쪽에선 잘 안 보인당게.”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신사들이 전북 정읍시 고부면의 한 초등학교를 점령했다. 한여름 뙤약볕에 초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행사용 무대를 설치하는 인부들을 진두지휘하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모두 고부초등학교 졸업생들이다.
인구 4000명의 시골마을이 특별한 광복절을 맞는 초등학교 때문에 들썩이고 있다. 나라의 해방과 개교 기념일이 같은 이 학교가 올해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
고부초등학교는 구한말인 1906년 8월 15일 사립광화학교로 개교, 1908년 공립고부보통학교로 편입됐다. 한 세기가 흐를 동안 이 학교는 800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세월만큼 학교는 풍상(風霜)을 겪었다. 학교가 보관하고 있는 구한말 관보(官報) 복사본을 보면 학교 설립을 인가한다는 내용 끝에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라고 적혀 있다. 학교 부지는 구한말 지독한 학정(虐政)으로 동학혁명을 촉발시킨 고부군수 조병갑이 기거했던 고부군 관아가 서 있던 곳이다. 동학혁명 때 불타버린 관아 자리에 학교가 들어섰다.
현재는 조그만 면 소재지에 들어선 7개 학급, 전교생 103명에 불과한 시골 초등학교지만, 100년 전 개교 때 이 지역은 19개의 면을 거느린 군(郡)이었다. 하지만 1914년 일제는 동학혁명의 진원지로서 청일전쟁의 시발점이기도 했던 고부군을 잘게 쪼갰다. 고부면만 남기고 나머지 마을은 부안군, 고창군 등으로 분산시켜 버렸다. 을사조약 이후엔 헌병대가 상시 주둔해 이곳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 정읍 고부초등학교 100주년 기념탑./김영근기자
“일제 입장에선 동학혁명이 발생한 곳이니 껄끄럽지 않았겠소. 이 지역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면 지독하게 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워낙 감시의 눈이 심하다 보니 이 지역 출신들은 주로 다른 지역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어.” 이 학교 총동창회장이자 향토사학자인 은희태(76)씨의 말이다. 학교의 낡은 학적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해방 후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던 나용균씨, 전북 지역에서 독립활동을 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한 은희송씨 등이 있다. 은희태 동창회장은 “당시 고부군에선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부군 태생의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이 학교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100주년 행사는 14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당일인 15일에는 오전 9시20분 기념탑 제막식을 비롯해 전직 교직원, 동창생 및 재학생 1500여명이 어우러지는 추억의 운동회가 열린다.
안성 고부초등학교장은 “개교기념일이 훗날 광복절과 일치한 것은 우연이었다”며 “하지만 나라가 불안하던 시절 학교를 세운 설립자들이 언젠가는 우리 학생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게 되길 염원한 게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극기가 걸려 있는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100년이 흐른 뒤 자유로운 우리 땅에서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지 않은가”라고 감격했다.
정읍=김재곤기자 / 조선일보
입력 : 2006.08.14 23:56 05' / 수정 : 2006.08.14 23:58 47'
 
 
 
시골 초등학교가 개교기념 우표 발행

전북 정읍의 고부초등학교, 100주년 맞아…
전북 정읍의 고부초등학교, 100주년 맞아... "동학혁명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 강해"

 
▲ 고부초등학교 안성 교장(왼쪽)과 은희태 총동창회장이 학생들과 함께 개교 100주년 기념우표를 들고 밝은 표정을 짖고 있다.
지방의 한 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나만의 우표’를 발행했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의 고부초등학교는 7월 11일 ‘나만의 우표’ 14장짜리 100세트를 발행했다. 이 학교는 올해 8월 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나만의 우표’는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산하단체인 한국우편사업지원단이 2001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개인이나 단체가 기념용으로 발행을 의뢰하는 맞춤형 우표라고 보면 된다.
고부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우표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왔다. 개교 당시의 캠퍼스와 현재 캠퍼스를 번갈아 메인 사진으로 쓰고 각각 나머지 사진을 보조 사진으로 배치했다. 태극기는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1906년에 개교한 이 학교의 설립일이 공교롭게도 현재의 광복절인 것을 기리기 위해서다. 한 세트에 220원짜리 우표 14장이 들어가 있으며 현재 이 학교 동창회는 100세트를 발행한 상태다.
우표 발행 아이디어는 올해 초 이 학교 총동창회 김정일 부회장이 냈다. 정보통신부 홍보담당관을 지낸 김 부회장은 6월 10일 개교 100주년 준비 모임에서 기념우표 발행을 정식 제안했고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는 “처음에는 미국에 있는 초등학교 동기한테 선물을 보내려고 생각하다 모교의 개교 100주년이 임박했으니 기념우표를 만들어 보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반응이 좋으면 8월 5일 고부초등학교 월례회의에 400세트를 추가로 발행하는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우표는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우선 면소재지에 있는 시골 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를 낸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고부초등학교는 전북 정읍시 고부면에 있는, 전교생이 103명에 불과한 미니 학교다. 전체 학급수도 7학급밖에 안 된다. 고부면사무소에 따르면 고부면의 인구도 7월 19일 현재 3923명이다.
이런 현실만 놓고 보면 역사가 100년이나 되는 학교가 면소재지에 있는 게 신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부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지금은 고부가 정읍시의 일개 면에 불과하지만 1914년 3월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이전만 해도 군(郡)이었다. 당시 전북지역에서 전주 다음으로 큰 고장이 고부군이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 은희태씨는 “고부군은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만 해도 관내에 19개 면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이 지역에 역사가 100년이나 되는 학교가 들어선 이유가 짐작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성세(成勢)가 대단했던 고부군이 왜 일개 면으로 축소됐을까? 그것은 고부군이 1894년에 발생한 동학혁명의 성지(聖地)이기 때문이다. 녹두장군으로 유명한 고부군 주민 전봉준은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맞서 고부군에서 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내걸고 고부관아(官衙·관청)를 습격하는 것으로 동학혁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정부는 동학혁명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고 이에 맞서 일본이 군대를 파견하면서 그 해 7월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동학혁명을 진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동학의 발원지인 고부군이 늘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결국 일제는 1914년 3월 고부군을 현재의 고부면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18개 면을 정읍군과 부안군, 고창군으로 쪼갰다. 조선 말에 인구 3만8000여명에 달하던 고부군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개교 당시(사진 위)와 현재의 고부 초등학교
고부의 수난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일개 면으로 격하된 것도 모자라 고부 출신인들은 ‘반역지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졌다. 이 학교 총동창회 은희태 회장의 회고. “일제는 물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동학혁명을 ‘동학란(東學亂)’이라고 부르면서 좋지 않게 봤어요. 그러니 바깥에 나가 사는 고부 사람들은 고부 출신이라는 걸 숨기고 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고부 출신 중에 정치인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학교의 졸업생(8001명)은 교육계 쪽에 많이 진출한 게 눈에 띈다. 은희태 동창회장은 “졸업생 중에 박사가 25명, 고시합격자 6명, 사무관 이상 30여명, 교감 이상 20여명”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움츠러들기만 했던 고부 사람들의 어깨는 1980년대 들어 이 사건이 재평가 받아 명칭이 ‘동학란’에서 ‘동학혁명’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펴지기 시작했다. 한 시골학교의 100년 세월에 우리의 슬픈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셈이다.
고부초등학교는 지금은 공립이지만 처음에는 사립학교였다. 당시 고부군수였던 정용기가 1906년 8월 15일 지역 유지들과 힘을 합쳐 민족교육을 위해 관아 안에 사립학교인 광화(匡和)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조선통감부 시절인 1908년 5월 25일 공립 고부보통학교로 바뀌었다. 이것이 고부초등학교가 옛 고부관아 터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이 학교는 97년간 지켜오던 개교기념일을 올해부터 바꾸었다. 지난해까지 5월 25일을 개교기념일로 하다가 올해부터 8월 15일로 바꾼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2003년 ‘고부향토지’를 집필한 향토사학자 은희태 고부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은 책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다가 공립고부보통학교와 이 학교의 전신(前身)인 광화학교의 개교기념일이 다른 것을 발견했다. “이미 일본에 사실상 주권을 빼앗긴 조선통감부 시절에 당국이 학교를 사립에서 공립으로 바꾸면서 개교기념일도 바꿨는데 워낙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 채 지금까지 진짜 생일을 모르고 지나왔던 겁니다.” 그는 “증빙자료는 발견했지만 개교기념일을 바꾸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려 겨우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부터 바꿀 수 있었다”며 “1906년에 설립된 우리 학교의 개교기념일이 광복절과 날짜가 겹치는 걸 보면 이날 우리가 해방되리라는 것을 내다본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의 모교애는 강한 편이다. 전북에서 초등학교로는 세 번째로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지만 개교 100주년 기념우표를 내는 것은 이 학교가 처음이다.
이 학교 총동창회는 개교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것을 비롯, 지난 3월부터 4개월 만에 1억원이 넘는 모교발전기금을 모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고부초등학교 안성 교장은 “동학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과 동문들의 강한 애교심은 우리 학교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우리 학교는 지난해 전북도교육청이 지정한 과학교육연구시범학교로 지정되는 등 21세기에 맞는 인재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부초등학교 안성 교장(왼쪽)과 은희태 총동창회장이 학생들과 함께 개교 100주년 기념우표를 들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정읍(전북)=박영철 주간조선 기자
출처 : Re:정읍고부초등 개교100주년 큰잔치 _ 追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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